소치(小癡) 허련(許鍊), 남농(南農) 허건(許楗)을 잇는 남종화의 큰 산으로도 꼽힌다. 고인은 개인의 예술적 성과뿐 아니라 청년작가 육성, 장학회와 문화재단 설립 등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미술평론가들은 남농의 제자이면서도 스승의 화풍을 따르지 않고 아산준법으로 독창적인 한국 수묵산수의 세계를 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고인은 ‘아산주인’(雅山主人)이라는 호를 ‘아산’(啞山)으로 바꿔 쓰기도 했다. ‘아름다울 아’를 ‘벙어리 아’로 바꾸고 무욕무위의 삶 속에 욕심 없이 살면서 가진 것을 나눠주었다.
전남 신안출신의 고인은 69살에 곡성군 죽곡면 연화리로 거처를 옮겨 탈속의 자연 속에서 평생 수집한 소장품과 부지 1만4천여㎡를 기증해, 1997년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 도립옥과미술관이 문을 여는 데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태천1구 태천마을에 고인의 납골당이 있다.
따라서 고인의 삶을 기리고 고인의 작품을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아산미술관’은 신안이나 화단에 입문했던 목포, 또는 작품 활동무대인 광주에 건립되는 것이 합당하다. 그래야만 고인이 남긴 화단에서의 업적이 고인의 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단순히 고인의 작품을 기증 받는 조건으로 고인의 호를 딴 미술관을 짓겠다는 약속을 순천시장이 했다는 것 때문에, 고인의 호를 붙인 미술관을 시립미술관으로 건립하겠다는 것은 ‘철학’과 ‘문화유산’의 관점에서도 한참 벗어난다.
한 예를 들어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우리나라에 작품을 기증한다고 해서 ‘국립피카소미술관’을 건립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면 그건 문화유산의 올바른 전승이 아니며 ‘철학’적 정체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국내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지만 세계 미술사에 ‘비디오아트’라는 한 장르를 개척한 백남준을 기리기 위해 ‘국립백남준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타당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점이 미술사적으로도 작가와 지역민이 교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며, ‘철학’적 관점은 물론, ‘문화유산’의 올바른 전승과도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한국타임즈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