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중국사 공부 때나 들어봤던 말이다. '문고리 권력'? 대통령 집무실에 아직도 문고리가 있는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웬 '십상시', 웬 '문고리 권력'인가? 유령도 아닌 실체로서 말이다. 후한시대로의 회귀인가. 검찰조사가 끝나면 그 실체가 자명 하게 드러나겠지만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역대정권에서도 권력자주변 인사들의 암투는 더러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통령 측근들끼리 서로 멱살잡이에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마당에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남의 나라 얘기하듯 하고 있다. "찌라시 같은 얘기들로 나라가 흔들리는 건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찌라시가 만들어진 곳도, 유출된 곳도 청와대임에도.
사태가 터진 것은 터졌다고 치자. 더 큰 문제는 이를 수습할 사람이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사태 발생 이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할뿐더러 수습키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은 어찌 보면 이번사안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제가 터졌을 때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어쩌면 자신과도 관련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실책이다.
게다가 사태 발생 후 그는 그림자처럼 떠돌며 몸을 사리고 있다. 오죽하면 중앙일보가 8일자 첫 사설로 '청와대 비서실장이 안 보인다'며 닦달하고 나섰겠는가.
청와대 비서실장만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각의 선임자 국무총리도 안 보인다. 혹자로부터 '재활총리'로 불리는 정홍원 총리가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까? 기대난망이다. 그는 총리자리 하나 추스르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사퇴가 반려된 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 총리는 개각 땐 교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말하자면 물러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청와대와 한 몸인 여당. 청와대에서 오찬모임이 있었다. 여당 수뇌부들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 몸"이라고 말했다.
동석했던 이완구 원내대표는 '대통령 각하'를 세 차례나 연발했다고 한다. 왠지 모르지만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꼴이다. 사태 수습은커녕 오히려 화를 키울 자들이다.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그의 명저 '사기(史記)'에서 이렇게 썼다. [家貧思良妻(가빈사량처) 國亂思良相(국난사량상)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신하를 생각한다.]
이처럼 나라가 어지러워도 사태를 수습하는 자 하나 없고, 나서려는 자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정(政)피아', '서금회'가 날뛰는 판국에 누가 목숨 바쳐 난국을 수습하려 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의 진짜 위기는 '찌라시' 때문이 아니다. 난국을 헤쳐 나갈 이순신 같은 '어진 신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위기의 핵심일지 모른다.
한국타임즈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