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후보를 순천·곡성 주민들이 당선시켜준 건, 순진을 가장한 노회한 정치'꾼'들이 득세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이제 이정현 의원은 호남에 지역구를 가진 여당 국회의원으로 지난 18대(비례대표)에 이어 19대 의원으로서 여당 내에서 가지게 될 정치적 위상이 과거와 한층 다르게 됐다. 지금까진 현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힘 있는 여당실세 중 하나였다면, 지금부턴 여당 내 차기 대권후보를 '예약'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쪽짜리 '인턴 국회의원'이 호남에서 당선됐다고 단숨에 대권후보 운운하면 선뜻 실감이 가진 않겠지만, 이정현의 호남당선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루지 못했던 정치혁명이고 한국정치사에 변화의 대 장정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정현 의원이 선거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다. "1년 10개월짜리 한 번 써 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그때 버리시라"였다. 또 "호남예산지킴이에서 '호남인재 키움이'가 되겠다"고 누누이 말했다.
더 있다. 당선 소감에서 "선거 기간 내내 '순천보은' '곡성보은'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다닌 것처럼 앞으로 주민들을 하늘처럼 받들고 은혜를 갚겠다"며 "이번에 표를 주신 분들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일단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또 이번에 표를 주지 않은 분들의 뜻을 제가 왜 모르겠느냐"고 밝혔다. 또 "이제 직책은 국회의원이지만 여러분의 머슴이자 노예"라며 "주민 여러분은 이러한 저를 마음껏 부리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바로 이 지점이 이정현 의원이 후보시절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유권자가 그에게 마음을 열게 한 대목이다. 이 같은 이 의원의 선거 전략과 직접적인 호소는, 그동안 호남지역 유권자 및 시민들이 접해온 새정치연합(구 민주당)의 '무조건지지'에 편승하는 후보들의 모습과 달랐던 것이다.
과거 새정치연합 후보들은 호남지역 유권자가 너무도 당연히 자신들을 찍을 것이라는 '자만'과 그 자만에 기생하는 '거만'과 '오만한' 태도에 호남유권자들이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그 '틈새'를 기가 막히게 이 의원은 파고들었으며, 순천·곡성 유권자와 지역민들은 그의 투박하나 확실하고 굵은 메시지에 마음을 연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생(밥)'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정치는 민생이다. 뛰어난 정치철학도 좋고 이념도 중요하다. 그것뿐이랴 대의명분 역시 정치에 꼭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이 팍팍한데 이념과 철학과 대의명분이 민생만 할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밥이즘'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그 어떤 고상한 정치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철학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다 무용지물이 된다. 조금 서글프긴 하나, 대의명분은 없어도 살지만 '밥'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 철학과 이념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민생'이 해결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을 이 의원은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래서 그가 내건 공약 자체가, 구체화한 지역밀착형 정책이었다. 이른바 민생, 곧 '밥'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현직 대통령을 등에 업은 막강한 힘이 뒷받침되는 공약.
■ 지역민생 해결 후 국가경제 비전 가지길
■ 호남 발 여당 대권후보 되면 호남표 결집 가능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치는 민생이다. 때문에 현실이다. 앞으로 이정현 의원은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가. 1년 10개월 동안 끈임 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부단하게 뛰어야 한다.
자신의 공약을 확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더 나아가 지역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지 로드맵을 만들고 시민들의 지혜도 빌리고 함께 논의해 가야할 것이다. 그게 이루어진다면 이 의원은 여당 내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를 것이다.
이제 이 의원 스스로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는 그의 고향이 호남이라는 것이다. 여당이 매번 대선 때마다 그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호남이 그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여당 내에서 '약점'이자 동시에 오직 그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호남출신 이라는 '약점'을 그가 '장점'으로 최대한 승화시키고 융합해내면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여당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 그 밑자락이 1년 10개월 사이에 그가 보여줄 순천·곡성 국회의원으로서 활약과 노력에 달려있다.
'나홀로 선거'로 제1야당을 통째로 집어삼킨 그의 정치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것이다.
그는 당선소감에서 날카로운 정치 감각을 보였다. "이번에 이정현에게 표를 주신 분들은 이정현이 잘 나서가 아니라 일단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판단이다.
순천·곡성의 유권자들은 이정현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소신과 뚝심을 평가하고 일할 기회를 준 것이다.
만약에 이정현 의원이 지역구도를 깬 것에 심취해 민심 섬기기를 소홀히 한다면, 그래서 마음을 연 지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면, 26년 만에 이룬 대업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당선을 축하하며, 지역과 정실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가 리더가 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한국타임즈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