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사람=허새롬 평론가] 발렌틴(유제니오 데베즈)은 다이빙 선수인 아버지로부터 물의 공포를 이기는 법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물의 무서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결국 풀지 못한 숙제처럼 물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천성이 어리바리한 발렌틴의 기질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한데 아버지 곁을 떠난 그는 무료하고 의미 없는 곳에서의 삶을 위태롭게 이어가는데 정작 본인은 즉흥적으로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가는 그의 불안정한 하루의 삶이 싫지 않은 듯 마냥 즐거워 보인다.

작은 곤충 앞에서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어설픈 겁쟁이 발렌틴은 많은 여자들을 만나 유희로 시간을 허비하는데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줄리(제시카 린제이)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숙제를 남기고 홀연히 스쳐가듯 그의 곁을 머물다 떠나간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발렌틴에게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남겨진 여인으로 존재하던 줄리는 지쳐 보이는 초췌한 모습으로 담배 냄새를 풍기며 한 아이를 안고 나타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매기(로레토 페랄타)이다.

관객의 시선으로 보면 누가 봐도 앞으로 발렌틴에게 전개될 운명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줄리는 가혹(?)하게도 발렌틴에게 10달러의 택시비를 달라고 한 후 그의 품에 작은 아이를 안겨두고 홀연히 떠나 버린다.

졸지에 원하지 않은 아기를 떠안게 된 발렌틴은 돌연 아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잘못 살아온 자신을 후회할 시간마저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아이 양육이라는 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발렌틴은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맑은 눈웃음으로 까르르 웃는 매기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듯 대하지만 그의 얼굴에 작은 웃음까지는 차마 감추지는 못하는데 아이의 기저귀를 처리하는데 남의 손을 빌리면서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쌤통이고 은근히 고소하기까지 하다.

발렌틴은 매기의 엄마 줄리를 찾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LA로 향하는데 별다른 직업도 없이 한 아이의 아빠로는 자격미달인 그에게 닥친 벼락같은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매기의 엄마이자 그에게 풀지 못한 숙제를 남기고 떠난 줄리를 찾아 힘겨운 여정을 시작한 발렌틴의 절망적인 상황은 계속 이어지는데 결국 아이 엄마 찾기를 포기해야 할 즈음, 호텔 소모품 바구니에 몰래 남겨둔 매기에게 위기의 상황이 닥치게 된다.

수영장의 물속으로 아기가 빠져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발렌틴은 자신이 평생 풀지 못한 숙제인 물에 대한 공포심 트라우마를 바로 눈앞에서 직면하게 되는데..., 결국 발렌틴은 자신이 안고 온 아기인데 이름도 모르는 딸을 위해 생각나는 모든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물에서 구해낸다.

아이를 구해내는 순간 발렌틴은 과거에 자신의 아버지가 넓은 바다에 그를 내 던져버린 원망의 굴레인 트라우마의 장벽을 스스로 뛰어 넘어 매기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발렌틴이 극적으로 딸 매기를 구해내는 장면은 마침 그 호텔에 묵고 있던 영화 제작자 프랭크 라이언(다니엘 레이몬트)의 눈에 띠게 되는데 인생역전 운명의 그 순간, 그 일로 인해 발렌틴은 스턴트맨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매기를 통해 삶의 목적을 찾은 발렌틴은 좋은 환경에서 매기를 양육하기 위해 스턴트맨의 역할에 충실하고 부녀의 행복한 시간은 영원히 지속될 듯하지만, 늘 그렇듯 영화제작자는 관객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예쁘고 착한 딸로 성장해가는 매기는 발렌틴에게 엄마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는데 그런 딸에게 발렌틴은 매기를 버린 무책임인 엄마를 대신해 가짜 편지를 보낸다.

매기는 아빠가 만든 가짜 엄마의 환상을 희망으로 여기며 엄마를 기다리게 되는데 정작 그런 부녀에게 나타난 엄마 줄리는 양육권을 주장하는 소송과 함께 매기가 발렌틴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결국 줄리로 인해 발렌틴과 매기는 생물학적인 친자 사이가 아님이 밝혀지지만 사랑으로 매기를 키워온 아빠의 진심이 담긴 사랑으로 엮인 부녀사이는 생물학적인 친자의 차이를 극복해 낸다.

결국 사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한 겹씩 쌓아가는 블록처럼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는데 부서지지 않은 둘의 사랑은 견고한 블록처럼 단단하고 강했다.

영화는 시한부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발렌틴이 아닌 매기에게 대입하게 되는데 발렌틴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딸을 위해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며 후회 없이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슬프지만 발렌틴에게 매기가 했던 사랑스런 그 지저귐, 일하러 가기 싫어하는 아빠를 어르고 달래는 일곱 살 아이의 잔망스러운 행동 들..., 그 모두가 몹시 아프지만 한 장면 장면으로 나누어보면 마치 마시멜로처럼 달콤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영화 '사랑해 매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