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는 최근 서울대 남부학술림 광양사무소에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산림·생태·교육·연구 자원의 지역 연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자료의 상당 부분은 박 시장의 민선 9기 공약인 '서울대병원 산업의학·재활 통합 국가메디컬클러스터' 추진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돼 있다.
문제는 이 메디컬클러스터 구상이 규모, 재원 조달, 고용 효과, 단계별 절차, 중앙정부·서울대의 공식 입장 등 기본 정보 없이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는 선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철강·항만·석유화학·조선·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과 연계해 산업의학 특화 거점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은 제시되지만, 전남 동부권의 실제 의료수요, 기존 대학병원 논의와의 정합성, 재정 부담에 대한 실질 검토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면, 백운산과 서울대 남부학술림을 둘러싼 현실은 훨씬 무겁다. 서울대의 백운산 남부학술림 무상사용 기간은 1946년부터 80년으로, 2026년 종료를 앞두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추가 국유재산 무상양도는 불가하다고 못 박았고, 시민사회는 백운산 공공성 회복과 국립공원 지정, 공공 중심 관리체계 전환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지역에 시민사회단체는 '백운산 국립공원 지정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백운산은 특정 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과 국민 모두의 생태유산"이라며 국립공원 지정, 공공관리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시장님, 백운산을 어쩔라요?", "서울대 재임대 반대"를 내건 1인 시위와 퍼포먼스까지 이어지지만, 광양시와 정치권은 여전히 뚜렷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 논평과 보도에 반복된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간담회에서 백운산·남부학술림을 산업의학·의료·치유 거점 구상에 포함시키면서도, 2026년 이후 백운산을 어떻게 시민 품으로 돌려놓을지, 국립공원 지정 논의와 어떤 로드맵으로 연계할지에 대한 구체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공공자산인 백운산을 둘러싼 국립공원 지정 요구와 서울대 사용 연장 가능성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시정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백운산 문제를 피해 간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동부권 의료현안과의 괴리도 크다. 순천·여수·광양권의 가장 시급한 의제가 '전남 몫 대학병원' 설립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목포대와 순천대가 각자 대학병원 유치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광양시장이 서울대병원 메디컬클러스터를 광양 공약처럼 앞세우는 것이 순천을 포함한 동부 6개 시군의 정서, 지역 대학과의 관계를 고려한 선택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과의 자리에서 서울대병원 구상을 설명한 것도 협상 상대와 의제 설정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사회는 "지금 필요한 것은 병원 유치 구상보다 백운산 공공관리·국립공원 로드맵"이라며, 메디컬클러스터 담론이 핵심 현안을 가리는 장막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대병원이 광양에 들어오길 마다할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한 개인의 꿈이 아니라 15만 시민의 삶과 자연을 책임지는 공인이다. 백운산 무상사용 종료라는 역사적 전환점 앞에서, 백운산을 어떻게 보전하고 시민에게 돌려줄지에 대한 구체 비전 없이 거대 의료 프로젝트만 이야기한다면, 그 구상은 결국 '아무 말 대잔치'라는 냉소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유권자가 진정 원하는 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읽고 그것을 공론화·절차에 따라 실현하려는 의지로 평가받는다. 백운산 무상사용 종료와 국립공원·공공관리 논의가 지역사회 최우선 의제로 떠오른 지금, 박성현 시장과 광양시는 메디컬클러스터 구상보다 먼저 백운산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juntotal20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