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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詩] 포석 조명희 시인의 '짓밟힌 고려'
작성 : 2022년 08월 19일(금) 11:33 가+가-

[조명희 시인의 ‘짓밟힌 고려’ 표지]

'짓밟힌 고려' - 조명희 -

일본 제국주의 무지한 발이 고려의 땅을 짓밟은 지도 벌써 오래다.
그놈들은 군대와 경찰과 법률과 감옥으로 온 고려의 땅을 얽어 놓았다.

​칭칭 얽어 놓았다 ─ 온 고려 대중의 입을, 눈을, 귀를, 손과 발을.
그리고 그놈들은 공장과 상점과 광산과 토지를 모조리 삼키며 노예와 노예의 떼를 몰아 채찍질 아래에 피와 살을 사정없이 긁어 먹는다.​

보라! 농촌에는 땅을 잃고 밥을 잃은 무리가 북으로 북으로, 남으로 남으로, 나날이 쫓기어가지 않는가? ​
뼈품을 팔아도 먹지 못하는 그 사회이다. 도시에는 집도, 밥도 없는 무리가 죽으러 가는 양의 떼같이 이리저리 몰리지 않는가?​
그러나 채찍은 오히려 더 그네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

순사에게 눈부라린 죄로, 지주에게 소작료 감해달란 죄로, 자본주에게 품값을 올려달란 죄로.​
그리고 또 일본 제국주의에 반항한 죄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하여 싸워가며 일한 죄로!
주림과 학대에 시달리어 빼빼마른 그네의 몸뚱이 위에는 모진 채찍이 던지어진다.​

어린 ‘복남’이는 저의 홀어머니가 진고개 일본 부르주아놈에게 종노릇하느라고, ​
한 도시 안, 가깝기 지척이건만 벌써 보름이나 만나지 못하여 보고싶어서, 보고 싶어서 울다가 날땅에 쓰러지어 잠들었다.​

젊은 ‘순이’는 산같이 믿던 저의 남편이 품팔이하러 일본간 뒤에 4년이나 소식이 없다고, 강고꾸베야에서 죽었는가 보다고, 감독하는 일본놈에게 총살당하였나 보다고, 지금 일본 관리놈 집의 밥솥에 불을 지펴주며 한숨 끝에 눈물짓는다.

아니다. 이것은 아직도 둘째다 ─​

기운 씩씩하고 일 잘하던 인쇄 직공 공산당원 ‘성룡’의 늙은 어머니는 어느 날 아침결에 경찰서 문턱에서 매맞아 죽어 나오는 아들의 시체를 부등켜 안고 쓰러졌다 ─​
그는 지금 꿈에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아니다, 또 있다 ─​

십 년이나 두고 보지 못하던 자기 아들이 정치범 미결감 삼년 동안에 옷한 벌, 밥 한 그릇 들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겠다고 천리 밖에서 달려와 공판정으로 기어들다가 무지한 간수 놈의 발길에 채여 땅에 자빠져 구을러 하늘을 치어다 보며 탄식하는 흰 머리의 노인도 있다.​

이거뿐이냐? 아니다.

온 고려 프롤레타리아 동무 ─ 몇 천의 동무는 그놈들의 악독한 주먹에 죽고 병들고 쇠사슬에 매여 감옥으로 갔다.​
그놈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형과 아우를, 아니 온 고려 프롤레타리아트를박해하려 든다.

고려의 프롤레타리아트! 그들에게는 오직 주림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
주림과 죽음!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않는다. 우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

우리의 뼈만 남은 주먹에는 원수를 쳐 꺼꾸러뜨리려는 거룩한 싸움의 힘이 숨어 있음을 믿기 때문에.​
옳도다, 다만 이 싸움이 있을 뿐이다 ─

칼을 칼로 잡고 피를 피로 씻으려는 싸움이 ─
힘세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새 기대를 높이 세우려는 거룩한 싸움이!​
그리고 우리는 또 믿는다 ─

주림의 골짜기, 죽음의 산을 넘어 그러나 굳건한 걸음으로 걸어 나아가는 온 세계 프폴레타리아트의 상하고 피묻힌 몇 억만의 손과 손들이.

저 ─ 동쪽 하늘에서 붉은 피로 물들인 태양을 떠받치어 올릴 것을
거룩한 프폴레타리아트의 새날이 올 것을 굳게 믿고 나아간다.

고려인한글문학의 시조 포석 조명희(1894-1938)가 쓴 저항시 '짓밟힌 고려'는 연해주 일대 모든 고려인의 심금을 울렸다. 시가 발표되자마자 고려인사회에 널리 퍼져나가 학생은 물론이고 청장년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이 시를 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1970~80년대까지 중장년 고려인들은 이 시를 널리 낭송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sctm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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