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인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유승민 같은 정치인이 설 자리를 남겨두는 여권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유승민은 퇴장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을 사퇴의 변으로 말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왕이면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2항까지 제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어쨌든 국민들은 유승민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됐다.
유승민 사퇴의 변을 보고 문득 과거 이회창 전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시절 사퇴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이 전 총리는 1994년 4월 "헌법상 부여된 총리의 소임을 할 수 없으므로 물러난다"는 사퇴서를 던지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여당에게 불리한 정치적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대쪽' 이미지가 강한 이회창 감사원장을 총리로 발탁해 정국반전을 꾀하는 듯 했으나, 불과 4개월 만에 이 전 총리가 반기를 들고 사퇴를 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권 지지자들과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이 전 총리를 오히려 지지함으로서 세간은 즉각 이회창 신드롬이 일었다. 그리고 이회창이 포스트 김영삼이 되는데 민자당 지지층은 이탈 없이 지지했다.
오히려 이회창을 반대한 TK 민정계 주역들이 지지자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정치권 전면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김영삼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까지 이회창과 척을 지자 선거에서 낙선시키는 것으로 이회창에게 힘을 몰아줬다.
여권의 지지자들은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음에도 이회창 전 총리를 후계자로 세웠다. 물론 대선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인제를 제어하지 않아 김대중 대통령을 탄생시킨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들 여권지지자들은 보낼 권력보다 가져 올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따라서 지나간 권력자가 불세출의 영웅이었을지라도 그를 보내고 새로운 기린아를 세울 수 있는 토대가 항상 마련되어 있다. 힘을 얻기 위해서 새차를 갈아타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야권은 어떤가? 야권은 여권과는 정 반대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현재 야권 정치인들과 야권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미 흘러간 권력이었던 노무현이란 이름에 갇혀있다. 죽은 노무현이 성역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되찾고 가져와야 할 권력, 따야할 미래 열매, 이런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필요하더라도 노무현 성역을 침범한다면 그건 갖지 못해도 좋은 게 현 야권의 모습이다. 노무현 성역을 침범할 개연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죽여야 할 대상이지 그에게 영역을 내줄 수 없다.
이 블랙홀이 제1야당을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만들고도 모자라 어디로도 갈 수 없도록 붙잡고 있다. 따라서 현 야권이 가장 먼저 선행적으로 해야 할 혁신은 그 어떤 거창한 혁신보다도 노무현 이라는 이름을 떨쳐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등이 과거 '정풍운동'으로 열린우리당을 탄생시키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들이었음에도 정동영과 천정배가 한미FTA문제로 노무현의 오류를 지적한 이후 배신자로 찍혀 외곽을 맴돌고 있다.
이것이 제1야당의 모습이다. 노무현이라는 블랙홀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때문에 노무현의 대변자처럼 인식되는 새천년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가장 먼저 혁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혁신의 대상이 당 대표이다 보니 그가 임명한 사람이 혁신위원장이고 그 위원장이 택한 사람들이 위원이 되어 혁신안을 만들어 발표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그러니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비웃거나 조소를 보내고 새로운 야당을 만들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회창은 현직 대통령 김영삼에게 직접 총질을 하여 '대쪽' 이미지를 간직한 채 포스트 김영삼의 자리를 차지했다. 박근혜는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과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고 포스트를 차지했다.
현재 제1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만 강조한다. 그리고 그 둘의 정신을 이어 받겠다고 한다. 그 둘을 뛰어넘겠다는 정치인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을 뛰어 넘어 새로운 제3의 길을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
한때는 김대중에 의존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던 이들이 지금은 노무현에 의존해 작은 권력에만 흠뻑 취해 그것을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 거리고 있다. 이래서는 야권의 미래가 없다.
야권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파괴는 더 많은 수가 더 빨리 노무현이란 블랙홀에서 탈출하는 일부터 시작이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한다.
과연 야권에서 성역화 되어 가는 죽은 노무현에게 총질을 하고 포스트 노무현의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
한국타임즈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